본문 바로가기
게임의 역사 이야기

아케이드게임의 시대 1970년대 (3)

by 관심사들의모임 2023. 3. 12.
728x90

어드벤처(Adventure, 1972)

 아케이드 게임기에 이어 가정용으로도 [퐁]이 큰 성공을 거둘 무렵, 완전히 다른 형식의 게임 세계가 창조되고 있었다.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의 라우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윌 크로우더는 취미였던 동굴탐사 경험을 기초로 판타지 기반의 컴퓨터 게임인 [어드벤처]를 1970년대 초부터 개발하기 시작하여 1975년에 출시한다. 이 게임은 대형 컴퓨터에 접속하여 플레이했던 최초의 게임인데, 이것은 텍스트 언어 기반의 게임이다. 다중접속을 지원해 주지는 않았으나 최초의 텍스트 기반 롤플레잉 형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메인 프레임 터미널에서 ASC 2 코드로 만들어진 그래픽을 보면서 명령을 텍스트로 입력해서 진행되는 게임이다. 스토리는 거대한 동굴탐험을 하는 전자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퐁]이 도트(공)와 바(라켓)로 구현된 가상의 이미지를 다이얼 형식의 패들(Paddle)로 조작하여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었다면, [어드벤쳐]는 텍스트 기반의 언어로 제시되는 콘텍스트(Context)를 플레이어는 해독하거나 상상하여 적절하게 '언어'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게임이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아직 그래픽 이미지의 구현이 불가했던 [어드벤처]에서는 언어적 선언만으로도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상호작용의 경험을 유발할 수 있었다.

 [어드벤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간 새로운 방식의 전자 게임으로, 향후 어드벤처 게임 장르 및 머드(MUD) 게임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브레이크 아웃 (Break out, 1976)

 


 [브레이크 아웃]은 벽돌 깨기 게임의 원조 격인 게임으로, 스티브 잡스가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과 게임의 본체의 그림은 '탈옥'을 암시하긴 하지만, 게임 플레이 화면만 봐서는 탈옥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것은 당시의 그래픽 처리 기술의 한계로 봐야 한다.

 이 게임의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를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쉬넬이 이 게임의 회로 구성을 위해 잡스와 워즈니악을 고용했다. 이후 잡스와 워즈니악은 1976년 4월 1일 만우절에 Apple을 설립했지만, 이미 그전에 아타리의 전설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했다고 전해진다

 



 전자 게임 논쟁의 시작, 데스 레이스 (Death Race, 1976)

 


 1975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가정용 [퐁]을 출시하여 아타리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도 강자로 등극하게 된다. 아타리의 가정용 [퐁] 게임기의 빅 히트 이후에, 1976년부터 많은 회사가 명절 특수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을 전개하여 미국에서는 전자 게임이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기 시작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976년 제작된 게임이 [데스레이스]다. 폭력 영화 데스레이스 2000을 모티브로 한 게임으로 행인을 죽이는 잔인성을 이유로 전량 리콜되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리콜 사유이다. 이 게임으로 말미암아 전자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과 비평적 담론이 시작되었다.

 

 

 

 

 

 

 

 

 

 


엠파이어 (Empire, 1976)

 


 [엠파이어]는 세계 정복 게임이다. 원터 브라이트가 제작한 게임으로 1976년에 보급되었다. 1980년대에는 PC 버전으로 컨버젼 되었다.

 


코모도어 (Commodore PET, 1977)

 


 [코모도어 PET]는 1977녀에 코모도어 인터내셔널(Commodore International)사에 의해 출시되기 시작한 600달러짜리의 가정용 컴퓨터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교육용 시장에서 최고의 판매를 기록한 바 있으며, 여러 종류의 게임들이 탑재된 바 있다.

 그러나 컬러디스플레이가 지원되지 않아서, 결국 개방적인 구조와 컬러 디스플레이를 보유한 애플 2 (Apple 2)에 밀리게 된다. 이후 애플 2와 성능이 비슷한 1982년 8월 코모도어 64를 출시하여 다시 한번 격돌하기도 하였는데, 코모도어 64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어 가정용 컴퓨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콜레코는 1982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한 게임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가정용 컴퓨터 쪽으로 선회하여 '애덤 컴퓨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게임기 콜레코비전과도 호환성으로 고려하였고 최초로 워드 프로세서를 탑재한 완벽한 컴퓨터 솔류션이었는지만, 10만 대 정도의 생산하는 데에 그쳤다. 가정용 컴퓨터 사업에서 고전을 하였던 콜레코는 1983년에 장난감 사업에 진출하여 '양배추 인형'으로 예상치 못한 큰 이익을 거두기도 하지만 결국 1988년 파산신청에 이른다.

728x90
반응형

댓글